[사건분석] “하루 수백 번 상하차했는데”…허리디스크 산재 왜 불승인됐나
물류센터에서 상하차 업무를 하던 근로자가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았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되지 않은 사례가 있다. 중량물을 반복적으로 취급하는 업무라면 산재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심사 과정에서는 업무부담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으면 불승인 결정이 내려지기도 한다.
수도권의 한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던 A씨는 약 5년 동안 택배 상하차 업무를 담당해 왔다. A씨의 업무는 차량에서 택배 물품을 내려 분류 라인으로 옮기거나 창고로 이동시키는 작업이었다. 취급 물품의 무게는 평균 10kg에서 25kg 정도였으며 하루 수백 개의 물품을 반복적으로 들어 올려야 했다.
A씨는 어느 날 작업 도중 허리에 심한 통증을 느꼈고 이후 통증이 지속되자 병원을 찾았다. MRI 검사 결과 요추 제4-5번 추간판탈출증, 즉 허리디스크 진단이 내려졌다. A씨는 반복적인 중량물 취급 작업이 질병의 원인이 됐다고 판단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의 판단은 달랐다. 공단은 조사 결과 해당 질병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산재를 불승인했다.
공단이 제시한 주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 이유는 업무부담에 대한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A씨는 중량물 상하차 작업을 반복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하루 몇 회 정도 중량물 작업이 있었는지, 취급 물품의 평균 무게가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부족했다. 공단 조사 과정에서 사업장은 일부 자동화 설비가 도입돼 있었고 작업 부담이 일정 부분 감소된 상태였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두 번째 이유는 기존 질환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점이었다. 건강검진 기록과 병원 진료기록을 검토한 결과 A씨는 과거에도 허리 통증을 호소한 기록이 있었고 영상 검사에서도 퇴행성 변화가 일부 확인됐다. 공단은 이러한 점을 근거로 해당 질환이 업무로 인해 새롭게 발생한 것이라기보다 기존의 퇴행성 질환이 자연적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세 번째 이유는 발병 직전 업무량 증가나 사고 등 특별한 계기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 업무 부담이 급격히 증가했거나 특정 시점에서 과도한 작업이 발생한 사실이 확인되면 산재 인정 가능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A씨의 경우 발병 직전 업무환경에 특별한 변화가 있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근로복지공단은 해당 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산재 신청은 불승인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사례에서도 산재 인정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실제 산재 심사에서는 업무부담과 의학적 인과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업무부담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자료 확보다. 단순히 중량물 작업을 했다는 진술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루 작업 횟수, 취급 물품의 평균 무게, 작업 시간, 작업 자세 등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제출할 필요가 있다. 작업 공정 자료나 물류 처리량 기록, 동료 근로자의 진술서 등도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의학적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이다. 허리디스크의 경우 퇴행성 변화가 일부 존재하더라도 업무로 인해 증상이 악화된 경우라면 산재로 인정될 수 있다. 따라서 의료기관의 전문의 소견을 통해 반복적인 허리 부담 작업이 질환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작업환경에 대한 설명도 중요하다. 실제 현장에서는 허리를 굽힌 상태로 물품을 들어 올리거나 비틀림 동작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작업 자세와 작업 구조를 사진이나 작업 설명 자료 등을 통해 제시하면 업무부담을 보다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불승인 결정이 내려졌더라도 심사청구나 재심사청구 절차를 통해 다시 판단을 받을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이 과정에서는 최초 신청 단계에서 제출하지 못했던 자료를 보완하고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보다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재 전문가들은 “허리디스크는 단순히 퇴행성 질환으로만 판단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업무로 인해 악화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며 “업무부담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자료와 의학적 소견이 충분히 준비되면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한다.
결국 산재 인정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은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입증하느냐에 달려 있다. 동일한 질병이라도 자료 준비와 설명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재 신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단순히 진단서를 제출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실제 업무내용과 작업환경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제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준비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산재 인정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