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판례] “산재보험 받았어도 손해배상 가능”…대법원, 손해액 산정 기준 제시
산업재해로 인해 산재보험 급여를 받은 근로자가 사업주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손해액을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지를 두고 중요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산재보험 급여를 먼저 공제한 뒤 과실상계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손해배상액을 산정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2025년 6월 26일 선고한 대법원 2023다297141 판결에서 산업재해보상보험 급여를 받은 근로자가 사업주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때 손해배상액 산정 방식에 대해 이른바 ‘공제 후 과실상계’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사건은 산업재해로 부상을 입은 근로자가 산재보험 급여를 받은 뒤 사업주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시작됐다. 산업재해 사건에서는 산재보험 제도를 통해 치료비나 휴업급여, 장해급여 등이 지급되지만, 경우에 따라 사업주의 불법행위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가 별도로 제기되기도 한다.
문제는 손해배상액을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산업재해 사건에서는 근로자의 과실이 일부 인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사건에서도 손해 발생 과정에서 근로자의 과실이 일정 부분 인정되는 상황이었다.
하급심에서는 산재보험 급여와 손해배상 책임의 관계를 두고 해석이 엇갈렸다. 일부에서는 사업주가 이미 산재보험에 가입해 보험급여가 지급된 이상 사업주의 손해배상 책임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80조 제2항의 취지와 산재보험 제도의 목적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산재보험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대해 신속한 보상을 제공하기 위한 사회보장적 제도이며, 근로복지공단이 보험자로서 보험급여를 지급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법원은 특히 재해근로자와 근로복지공단, 그리고 불법행위자인 사업주 사이의 이해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판결에서 대법원은 산재보험 급여 중 근로자의 과실 비율에 해당하는 부분은 근로복지공단이 최종적으로 부담하게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단순히 보험급여가 지급됐다는 이유만으로 사업주의 손해배상 책임이 전액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대법원은 손해배상액을 계산할 때 먼저 보험급여와 같은 성질의 손해액에서 산재보험 급여를 공제한 뒤, 그 다음 단계에서 근로자의 과실 비율을 적용하는 방식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 방식은 이른바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으로 불린다.
예를 들어 근로자의 전체 손해액이 일정 금액으로 산정되고 그 중 일부가 산재보험 급여로 지급된 경우 먼저 해당 보험급여를 전체 손해액에서 공제한다. 이후 남은 금액에 대해 근로자의 과실 비율을 반영해 최종 손해배상액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대법원은 이러한 계산 방식이 재해근로자 보호와 산재보험 제도의 취지, 그리고 불법행위 책임 원칙을 모두 고려한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대법원은 이와 같은 원칙이 제3자가 개입한 공동불법행위 사건뿐 아니라 사업주의 단독 불법행위로 발생한 산업재해 사건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밝혔다.
즉 제3자의 책임이 없는 경우라도 사업주의 불법행위로 인해 산업재해가 발생했고 그 과정에서 근로자의 과실이 일부 인정된다면 동일하게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으로 손해배상액을 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산업재해 사건에서 손해배상액 산정 방식에 관한 기준을 명확히 제시한 판례로 평가된다.
산재보험 제도는 근로자의 신속한 보호를 목적으로 하지만 동시에 사업주의 민사상 책임을 완전히 면제하는 제도는 아니다. 사업주의 불법행위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산재보험 급여와 별도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이러한 두 제도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손해배상액 산정 과정에서 재해근로자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산재 실무에서도 이 판례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산업재해 사건에서는 산재보험 급여와 민사상 손해배상이 동시에 문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산재보험 급여가 지급됐다는 이유만으로 사업주의 손해배상 책임이 자동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손해배상액 산정의 기준을 제시한 판례로 평가된다.